추억에세이2014.10.08 07:30

 

오줌 싸는 아기동상오줌 싸는 아기동상 이미지가 없어, 내용과 살짝 비슷한 이미지라 생각합니다. (2007 하동의 아침, 캐논 400D)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정문을 통과하면 운동장이 나오는 구조가 아닌, 바로 학교 건물로 이어졌다. 운동장이 측면에 있다고 해야 하나? 교실에서 운동장이 바로 보이지 않고, 밖으로 나가 건물 끝으로 가야 운동장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즉 정문에서 오른쪽은 운동장, 왼쪽은 교실이었다. 교실과 운동장이 분리되어 있으니, 삭막해 보일 수도 있고, 여기가 학교가 맞나하고 생각할 수 있어, 교실 건물 앞에는 운동장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나름 쉼터라고 할 수 있는 벤치 공간과 함께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그 연못 또는 작은 분수에는 유럽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오줌 싸는 아기동상이 있었다. 분수대 모양이 오줌 싸는 아기동상이라 하면 적절할 듯 싶다. 늦은 봄부터 여름방학이 될 때까지 아기동상은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건은 가장 졸리고 지루한 5교시에 발생했다. 영어가 담당인 담임선생님 시간이기에, 딴 짓도 못하고 졸음까지 참으면서 '한국인이 왜 영어를 이렇게나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의미심장한 고민을 하면 참 좋을 텐데, 이 딴 고민조차 할 수 없을 만큼 5교시는 참 힘든 시간이다. 담임의 말씀은 천천히 스멀스멀 내 오른쪽 귀로 들어온 후, LTE급으로 왼쪽 귀로 빠져나가 버린다. To 부정사가 뭐고, 문법이 뭐고, 동의어가 뭐고 말씀을 하시니 들려오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그때. 창가 쪽에 앉아있던 내게, 작은 연못의 그 아기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절대 시원해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순간 여기가 유럽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버렸다. 사실 전날 유럽에 대한 여행 프로그램을 봤던 지라, 방송에서 본 오줌 싸는 아기동상과 이 동상을 같다는 허무맹랑에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는 것보다는 눈 뜨고 있으니, 선생님에게 걸릴 이유는 없을 테니깐 말이다.

 

효과가 있었는지, 졸리지도 않고 누가 봐도 딱 범생 포스였다. 시선은 창 밖으로 향해 있기에, 들키지 않기 위해 책을 세워 나의 시선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해야만 했지만.

 

밖을 보고 있던 사람은 나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물론 아기동상을 본 사람은 나 혼자일 수 있겠지만, 지겨운 영어 시간을 버티기 위해 창가에 앉은 친구들이 슬쩍슬쩍 밖으로 시선을 돌렸던 거 같다. 이를 놓칠 울 담임이 절대 아니지. 그런데 졸고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혼낼만할 핑계를 찾지 못한 거 같았다. 수업을 잠깐 중단하고 아이들처럼 밖으로 시선을 돌린 담임이, 갑자기.

 

"저 분수, 왜 저렇게 물줄기가 약해?"라고 하셨다. 지루한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잠깐의 힐링(?)타임을 주신 듯싶었다.

"어디 어디"하면서 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은 분수대로 향했고, "어 정말 그렇네.", "날도 더운데 뭐 저래." 등등 다양한 리액션들이 나왔다.

그때, 나도 모르게 전혀 나와 상관없이, 입으로 튀어 나온 말. "터는 중인가 보죠"

순간 정적. 다들 무슨 소린가? 하면서 정말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렸다. 그리고 담임부터 빵 터지기 시작했다.

"야~ 너 뭐라고 한 거야?"

"아니, 오줌을 다 쌓고 터는 중인가 했죠."

 

하하하~~ 이때야 터지는 아이들. 난 그때 이거 뭔가 잘못된 건가 싶은 나머지, 또 담임한테 내 볼을 드려야겠구나 했다. 그때 담임의 체벌은 꼬집기였다. 내 자리까지 온 담임은 나의 볼을 만지기는커녕, 하하하 웃으시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너 우리 반 아이디어 뱅크하면 되겠다"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리고 남은 시간 수업은 그 웃음의 여파였는지, 지루하지도 졸리지도 않게 잘 끝났다. 그때부터 남은 학기 동안 담임의 레이더에 잡힌 나는 딴짓을 할 수 없는 착하디 착한 범생으로 마무리를 했다는 아픈 사연이 있지만, 그 날 담임의 "아이디어 뱅크"가 내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줄을 정말 몰랐다. 물론 완벽한 범생으로 보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범생 인듯 범생 아닌 범생 같은 나로, 큰 사고는 치지 않아도 혼자 만족할만한 사고를 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나만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내가 진짜 기발한 상상력을 갖고 있어서, 아님 진짜 아이디어 뱅크라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렸다. 사실 우리 집 근처에 큰 아버지네 큰오빠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4살배기 조카 녀석이 하나 있었다.

 

 

십 년이 넘도록 막내로 살았던 나에게, 4살 조카 녀석은 반가운 대상이 아니었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조카랑 싸우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조카녀석은 적군이었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늘 내방에서 내 물건을 자기 물건인 듯 마구 집어서 놀거나, 언제나 1순위였던 내가 그 녀석이 온 후부터 2순위로 밀려났던 것이다. "네가 고모인데, 좀 참아. 다 큰 녀석이 어린 조카랑 똑같이 굴다니, 쯧쯧"등등 어른들은 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했나 싶기도 하지만, 늘 막내 대접만 받던 내게, 배려, 양보보다는 소유가 강했던 내게, 녀석의 존재는 얄밉기만 했다.

 

이런 내가 밉지도 않은지 녀석은 날 참 많이 따랐다. 내가 싫다고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안 간다고, 고모랑 있겠다고 하는 녀석에게 나도 정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고모라는 호칭,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이고 있는데, 고등학생 시절 고모 = 아줌마라 생각했다. 밖에서 고모 고모 부르면서 따라 오는 녀석에게 "고모라고 하지 말고, 누나라고 해"하면서 사탕 하나 주면 바로 "누나, 누나"를 해줬다. 그런데 요 녀석이 집에만 갔다 오면 "다시 고모 고모"가 되어 버려서 호칭을 포기했지만 말이다.

 

녀석도 나와 교감이 통했는지, 어느 날부터 자신의 볼일을 나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신호가 오면, 유리로 된 작은 주스 병을 들고 나에게 온다. 그럼 난 녀석의 바지를 내리고, 녀석이 가장 편하게 볼일을 보도록 잘 받쳐준다. 강한 물줄기에서 서서히 약해질 때까지, 그걸 다 받아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녀석에게 직접 뒤처리를 하라고 하기에는 아직 스킬이 부족한 듯 싶어, 주스 병으로 물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할 즈음 톡톡 스냅을 이용해 반동을 준다. 약해진 물줄기가 빨리 끝이 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녀석의 볼일 담당은 나였고, 첨에는 잘못된 반동으로 손에 묻히기도 했지만, 달인 아닌 달인의 경지까지 오른 나는 녀석의 안락하고 맘에 드는 파트너(?)가 됐다. 가끔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찾을 때가 있었지만, 이젠 자기 엄마 아빠가 있어도 나에게 온다. '내가 그만큼 맘에 들었다는 거지,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지.'

 

담임의 그 한마디로, 학교 오줌 싸는 아기동상은 유럽의 유명 관광지에서, 순간 조카 녀석으로 변해버렸다. 동상의 물줄기가, 어쩜 그리도 닮았는지 나도 모르게 털어 줄 뻔 했다. 담임이 말한 아이디어 뱅크는 순전히 내 경험에서 나온 일상의 흔적이었다. 그때 진실을 말하지 못해 담임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때 그 말씀으로 늘 새롭고 기발함을 찾아야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선구안을 갖고 계셨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그 분수는 사라지고 없지만, 가끔 오줌 싸는 아기동상을 보게 되면 그때 그 추억이 생각나 혼자 웃곤 한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까칠양파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