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2014.10.13 07:30

 

자식은 죄인(캐논 400D)

 

<엄마와 딸의 대화>

엄마: 오늘 독감예방 주사 맞으러 보건소 간다.

딸: 왜 보건소에 가. 그냥 집 근처 병원에 가면 되잖아.

엄마: 보건소에 가야 무료란다.

딸: 그럼 나도 무료?

엄마: 65세 이상부터야.

딸: 아 그렇구나. 어 잠깐만(폭풍검색질 중), 굳이 보건소까지 안가도 돼. 65세부터는 동네 병의원에 가도 무료라고 기사 났어.

엄마: 어 그래, 보건소까지 안 가도 된다 말이지.

 

(그날 저녁)

엄마: (격양된 목소리로) 너 일루 와봐.

딸: 왜?!?!?

엄마: 25,000원 내놔.

딸: ???

엄마: 너(원래는 욕이었으나)땜에, 바보 됐으니 니가 주사 값 줘야겠다.

딸: 무슨 소리야? 무료 아니야. 거기 병원이 잘 못 안거 아냐. 기사에 정확히 무료라고 나와 있었어.

 

아침에 봤던 기사를 다시 찾아 본 후, 쥐구멍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지만 늦었다. '65세부터 독감예방 주사가 무료'라는 기사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앞에 한단어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년부터 65세 이상은 독감예방주사가 무료".(후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딸: 엄마가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믿었어? 그리고 벌써 갔다 온 거야. 뭐가 그리 급해서…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엄마: 니가 완전 당당하게 기사에 까지 났다고 하니. 그럼 믿어야지. 자식 말을 믿지. 누구 말을 믿어.

딸: 맞는 말인데,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 갔을 때 좀 알아 보고 하지.

엄마: .....

 

더 이상 말을 하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올 거 같아, 억울한 얼굴을 한 상태로 지갑을 연다. 그런데 갖고 있는 현금이 딱 15,000원.

 

딸: 카드 안 되나?

엄마: .....

딸: 알았다고. 준다고. 늘 내 말을 무시하면서 왜 하필 오늘은… 그런데 지금 만원밖에 없거든. 병원에 가서 엄마가 제대로 못 알아본 책임도 있으니, 반띵하자.

엄마: 우선 내놔. 나머지도 갚아.

딸: ㅠㅠ.

 

 

<엄마의 이야기>

딸의 말을 듣고, 동네 내과 병원에 갔다고 한다. 어떻게 오셨냐는 말에, 독감예방 주사 맞으러 왔다고 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바로 주사를 맞았고,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간호사가 '저기요'라면서 붙잡았다고 한다.

 

간호사: 저 돈을 안 내셨는데요?

엄마: 잉~ 돈이요? 65세 이상부터 무료라던데...

간호사: 어머님, 무료 예방접종은 내년부터입니다.

엄마: 우리 딸... 아니 내가 인터넷으로 봤는데, 무료라는 기사가 있던데.

간호사: 내년부터인데, 제대로 안 읽으셨나 보네요.

엄마: 내가 안경을 안 쓰고 기사를 봐서 고걸 놓쳤나 보네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딸내미가 잘 못 알려준 정보라는 사실을 감추고 본인의 실수였다고 했다. 그리고 예방접종을 하면서 무료인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살짝 이상한 기운을 느꼈지만, 당신이 일찍 왔고, 무료라는 정보를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당신만의 창피함으로 병원의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자존심 강한 엄마는 당신이 당한 창피함을 며칠 동안 못난 딸에게 퍼부었다.

 

 

며칠 전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건소가 있지만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귀찮아하던 엄마를 위해 알찬 정보를 알려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괜한 돈을 쓰게 해드렸죠. 그런데 돈보다 더 큰 창피함을 안겨드렸으니, 할말이 없더군요. 그리고 왜 '내년부터'라는 단어를 못 봤는지, 액땜이라고 둘러댈 수도 없고 참 난감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당당하게 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제가 죽을 맛이 더군요. 착한 일 좀 해보려는 저의 행동은 창피함과 괜한 돈이라는 결과를 낳게 해드렸죠. 동네 병원이라 원장, 간호사를 다 알고 있다면서 다시는 그 병원을 못 가겠다는 엄마에게, 그럼 딴 병원을 가라고 했다가, 결국 한 대 맞고 말았습니다.

 

참, 나머지 돈은 그냥 꿀꺽할 생각입니다. 그대신 용서(?)를 비는 차원으로 올해 독감예방 주사는 패스하기로 했습니다. 독감에 걸려도 할 말은 없겠지만, 독감예방주사가 얄미워서 돈을 또 내고 맞고 싶지는 않네요. 이 사건 이후, 엄마는 저에 대한 불신의 늪이 더더욱 깊어지셨습니다.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만든다고 해도 믿지 않으실 거 같네요.

 

 

관련 기사 - 어르신 무료 독감주사, 내년부터 모든 병원서

 

 

부끄러운 일인데, 다음 메인에 올라왔네요.(20141014)
그나마 모바일에만 나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다음에서 만들어 준 제목이 참 선정(?)적이네요.

 

 

 
 



하트는 저에게 커다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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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