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2014.10.19 07:30

 

본 내용에 적합한 이미지를 도저히 찾을 수 없네요. (캐논 400D)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여학생이라면 한번쯤 바바리만 입고 나타나는 남자를 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시간대는 아침 등굣길. 처음 그자식(?)을 보면 소리를 지르는 듯 무척 당황한다. 그러나 처음이 그렇지, 반복되다 보면 그냥 '저런 10센치'라고 생각하고는 가던 길을 간다. 물론 계속 놀라는 사람도 있고, 춥지 않냐고, 왜 그러고 다니냐고 과감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이도 있지만.

 

난 아쉽게(^^) 바바리맨을 본 적이 없다. 아니 보기는 했다. 그러나 늘 중요한 볼거리(?)가 지난 후 봤다는 게 문제다. 중학교 때는 집에서 5분 거리에 학교가 있어 볼 기회가 없었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 뒷산에서 활개를 펼치고 다니는 그자식을 볼 수 있었다. 항상 아이들의 고함을 듣고 가기에 매번 아쉬운 장면을 아쉽게 놓쳐버렸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술자리에서 나오는 음담패설을 가볍게 받아 칠 수 있는 나이가 된 어느 날 누구도 볼 수 없을 장면을 목격해 버렸다.

 

그건 그냥 바바리맨이 아니라, 명품(?) 바바리맨이라고 해야 하나?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만약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생기더라고 그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거 같다. 본격적으로 그날의 그 사건을 시작하기 전에, 주의사항이 필요할거 같다. 전반적인 내용은 누가 봐도 19금이다. 생생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지만, 사전검열 차원에서(블로그는 전체 관람가이기 때문에) 전문용어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왜 이런 글을 쓰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이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기에, 살짝 털어놓을까 한다.

 

 

4년전 가을.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 빠르다는 걸 알지만, 답답함이 싫어 버스로 항상 다녔다. 버스 중앙차선이 있어 막히지도 않고, 2번 정도 갈아타야 하지만 내렸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갈아타면 되기에 버스를 선호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같은 하루라고 생각한 그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버스 중앙차선이 사라진 교차로 부근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원래 1번 정도 신호대기만 하면 지났던 그 곳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꽉 막혀서는 차가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버스 운전기자 라인으로 앞에서 3~4번째 자리였던 거 같다. 이어폰을 끼고, 책이라도 읽어야 하지만, 그날따라 책도 안 갖고 나오고, 게임도 하트가 다 떨어져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빈둥빈둥 앞에만 보고 있기 뭐해서 날씨라도 볼 겸,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차 한대.

 

그 동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수입 SUV명품 차였다. 같은 브랜드로 세단은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SUV는 처음이었다. '오호~ 이런 차를 이런 곳에서 보다니, 근데 차 진짜 잘 빠졌다'하면서 뚫어져라 차를 감상하던 중, 차를 운전하고 있는 운전자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었다. 색상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남자가 소화하기 힘든 벨벳 재킷을 입고 있었다. '저런 재킷까지 소화할 정도라면 본인 차겠지'하면서 다시 차로 시선을 돌렸다. 참, 조수석의 창문이 반쯤 내려와 있었다.

 

창문이 열려있다는 걸 알고 난 후, 내가 너무 차를 뚫어져라 봤구나 싶어 민망함에 돌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시선은 다시 차가 아닌 운전자에게 갔다. 아닐 거라고 내가 잘못 본거라고 착각한 거라고 그런데 혹시나 싶어 급하게 시선을 돌려 버렸다. 시선을 돌리기 전까지 운전자가 배가 아픈 줄 알았다. 한 손은 운전대를 다른 한 손을 자꾸만 본인의 배를 때리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다 순간 떠오르는 어떠한 이미지로 인해 다시 시선을 돌리니, 오마이갓~ 학창시절에도 못 본 그자식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그것도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말이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와 차는 거의 같은 라인에 있었고, SUV인 관계로 차체가 높아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리면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즉, 굳이 보겠다고 자세를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자식이 '혼자서 몸으로 말해요'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조수석 창문은 열어 놓은 채로 말이다. 만약 내가 버스 창문을 내려 놓고 있었다면, 시각은 물론 청각까지 아이구 생각도 하기 싫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계속 보라고 자꾸만 손짓했지만, 이성적인 인간이라 다시 버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가끔 이성이 무력해질 때가 있다. 다시 내 시선은 그자식에게 갔고, 내 안의 나와 싸우면서 시선을 버스로 차로 왔다갔다 하면서 봐버렸다.

 

그런데 그자식도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느꼈는지, 조수석 창문을 올렸다(날 본거 같기도 하지만, 이건 확실하지 않기에). 하지만 선팅이 되어 있기에 안 보이겠지 했는데, 이게 뭐람? 더 잘 보였다. 살짝 어두워지니 더 은은하고 은밀하게 말이다.

 

차량 정체는 끝날 줄 모르고, 나는 계속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보면 안돼', '봐봐 좋은 추억이 될거야'로 나눠 싸우기 시작했고, 그자식은 점점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자식의 손이 조수석 보관함(정확한 용어를 모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보관함을 열고, 네모모양의 비닐로 된 작은 무언가를 꺼내 자기 앞으로 갖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버스는 움직이는데, 그자식의 차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정상에서 휴지로 코로 풀어야 했기에, 운전대를 잡을 손이 없었을 것이다.

 

버스는 달려나갔고, 나는 과감하게 고개를 확 돌려서 끝까지 보려고 했으나, 창문이 열려있지 않은 관계로 그자식의 야호~와 코 푸는 장면은 끝내 볼 수 없었다.

 

이 날의 놀랍고도 황당한 볼거리는 한동안 술자리의 요긴한 안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주었다. 같은 이야기이건만, 남녀의 반응은 달랐다. 동성 친구는 놀라움과 당황함 그리고 '혼자만 봐서 좋겠다'였다. 이성 친구는 '에헴~'과 '이~ 삐리리 삐리리 '였다. 바바리맨에 대한 친구들의 경험을 들어 봤지만, 이것보다 더한 바바리맨은 없었기에, 여느 바바리맨보다 더 망각하고 블록버스터급으로 명품바바리맨이라고 칭하고 싶다.

 

 

ps… '혹시 오늘은, 또 몰라 오늘도 차가 막히잖아.' 한동안 출근길 명품바바리맨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버스를 타도 항상 그 자리에 앉아 기다려 봤지만, 역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기에, 아쉽게(?)도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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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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