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세이2014.10.29 07:30

 

티파니에서 아침을그녀처럼 되고 싶었다.(출처 - 다음검색)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꿈을 꾼다. "나의 꿈은, 미스코리아." 그리고 그 꿈이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의 부모들은 알려준다. 유전의 법칙을 본인이 스스로 배우기 전까지 말이다. 가장 나쁜 행동이 거짓말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부모들은 차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얀 거짓말이 탄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될 거라 믿었다. 20세가 되면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미스코리아가 된다고 말이다. 그 시작은 아빠였다. "우리 공주님, 우리 공주님." 늘 이렇게 불러주셨다. 디즈니 역시 한 몫을 했다. 백설공주를 시작으로 인어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까지 공주가 나오는 만화영화는 나에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정말 공주라고 생각했다. 공주가 되기 위해 과감히 엄마의 화장대를 차지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공주 되기 참 쉬었다. 우선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가 필요했다. 옷감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스타일만 되면 만사오케이였다. 방법은 목욕할 때 쓰는 대형 수건이면 완성할 수 있었다. 어깨 아래로 타월을 감싸고, 빨래집게로 집으면 멋진 이브닝 드레스로 변했다. 여기에 겨울왕국의 엘자처럼 바닥까지 내려오는 멋진 마법사 망토는 이불이 대신해줬다. 신데렐라의 요정할머니가 없어 남루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건 상상으로 마무리 짓을 수 있었다. 문제는 왕관이었다. 지금이야 아동복 코너에 가면 여자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공주 의상이 갖춰져 있겠지만, 물론 내가 어린 시절에도 있었을 거 같다. 단지 그걸 내 아이로 만들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겠지.

 

왕관은 제작이 필요했다. 가장 손쉽게 대형 도깨비 빗을 이용해봤다. 그러나 자꾸 떨어져서 그 소임을 맡길 수 없었다. 그래서 리본형태의 머리핀을 이용해 봤지만, 왠지 왕관의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두꺼운 도화지를 이용해 만들었다. 아니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유치원에 가셔야 종이를 이용해서 만드는 방법을 알았고, 뾰족뾰족한 멋진 왕관을 완성 시킬 수 있게 되었다. 크레파스를 이용해 다이아몬드도 그려 넣고, 색색의 색깔로 색칠을 하면, 누가 봐도(나만 봐야 하지만^^) 멋진 왕관으로 탄생했다.

 

자, 어깨가 드러나는 이브닝 드레스에, 멋진 마법사 망토 그리고 왕관까지 완성을 시켰다. 그럼 남은 건, 메이크업뿐. 엄마 화장대로 달려가, 빨간색(다른 색은 눈에 들어오지 않음) 루즈(립스틱보다는 루즈가 더 어울림)를 살며시 챙겼다. 아이섀도우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메이크업을 잘 안 하는 엄마를 두었기에, 루즈로 만족해야 했다.

 

이젠 진짜 공주가 되었다. 혼자 공주처럼 우아하게 걷기도 하고, 멋진 백마를 탄 왕자를 기다리면서 나홀로 그야말로 쌩쇼(?)를 시작한다. 참 하이힐이 빠졌구나. 하이힐은 고모와 이모를 이용하면 된다. 하이힐을 싣는 건지, 끌고 다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집 밖으로 나의 우아하고 도도한 행차를 보여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밖으로 나갈 때, 복장과 왕관은 사용할 수 없었다. 공주라지만, 남들에게 보여주면 안 되는 비밀스런 공주였나 보다. 아무래도 복장이 자랑스럽지 못하기에, 밖으로 나갈 때는 하이힐만 사용했던 거 같다. 하긴, 마법사 망토인 이불이 땅에 닿고 온 동네 청소를 하고 다녔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없었을 수도 있을 테니깐.

 

행차가 끝나면, "우리 공주님, 우리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의 변신은 12시를 넘기지 못하고 아니 12시까지도 가지 못하고 늘 새드엔딩으로 끝나버린다. 그 이유는 마녀 때문이다. 아빠보다 항상 먼저 날 보는 마녀 때문에 공주 같은 나의 모습은 그녀의 거친 손에 의해 등짝을 내주고, 곧 이어 그 손은 입술은 물론 볼터치까지 한 내 얼굴에 사정없이 비누질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울보 공주로 변한다. 바보온달을 기다리는 평강공주처럼 말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늘 공주가 되었고, 그런 나의 모습은 얼마 후 새로운 공주 아이템을 득템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5월이 되면 찾아오는 바로 미스코리아 방송이었다. 푸른색 수영복은 맘에 안 들지만, 사자 같은 헤어스타일과 화려한 드레스는 바로바로, 내가 꿈 꿔왔던 공주 스타일의 전형이었다. 여기에 미스코리아 진만이 가질 수 있는 공주 봉이라고 해야 하나? 공주 막대라고 해야 하나? 정확한 용어를 모르기에, 그냥 '봉'이라고 하자. 그 동안 내가 공주가 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저 봉인 듯 싶었다. 그래서 나의 공주 아이템에 봉을 추가하기로 했다. 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것은 바로 총채였다. 먼지 털이 부분을 고무줄로 가지런히 묶으면 미스코리아 진이 들었던 그것과 유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완전체가 됐으니 완벽한 공주로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년기가 끝나고 초등학생이 되자, 공주는 너무 먼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공주가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웃나라 일본 공주의 모습을 뉴스에서 본 후 공주는 다 예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럼 공주의 꿈을 버려야 할까? 아니다. 공주 봉을 알게 해준 그녀들이 있지 않은가? 바로 미스코리아 말이다. 나의 꿈은 공주에서 미스코리아로 갈아 탔고, 하얀 거짓말을 몰랐던 나에게 어른들은 또다시 "우리 미스코리아, 우리 마스코리아"라면서 내 꿈을 보태줬다.

 

나이 때문에 안 되는 거였지, 진짜 미스코리아가 될 줄 알았다. 타월, 이불, 총채로 변신하지 않더라도 미스코리아가 될 줄 알았다. 몇 밤만 더 자면, 내가 바로 TV속에 나오는 그녀들처럼 "저의 꿈은 세계 평화입니다"라면서 인터뷰를 할거라고 굳게 믿었다. 생물을 배우기 전까지 말이다. 5, 6학년때 살짝 감을 잡았지만, 중고등학교때 키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했고, 8등신 몸매는 커가면서 만들어 질 거라 믿었다. 그리고 나의 꿈에 생명을 주는 심사위원보다 더 날카로운(?) 그들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생물이라는 교과목을 배우게 되고, 너무나 충격적인 유전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의 꿈을 그야말로 산산 조각난 유리가 되어 버렸다. 더불어 나의 든든한 후원자는 어린 딸내미에게 차마 그 진실을 알리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 버렸다. 왜 그들은 나에게 공주님, 미스코라아라고 불렀을까? 왜 그들은 나에게 가능하다고, 어려운 꿈이 아니라고 말했을까? 그 배신이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스스로도 조금씩 느끼긴 했다. 나보다 훨씬 예쁜 친구들이 더 많고, 지금의 내 키보다 더 컸던 친구들을 보면서,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나조차 인정해 버리면, 내 유년기가 너무 슬퍼지니깐.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난 미스코리아 안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5월이 되면 본방사수를 했다. 그리고 미스코리아에 된 그녀들을 보면서 "수술한 얼굴이야"라면서 거친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미스코리아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얼굴에 키에 암튼 내가 가진 모든 외형적인 모습은 그녀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스코리아도 안되니 슈퍼모델도 안되고, 최첨단 의학기술을 동원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어른이 된 지금, 친구의 딸에게 난 현실적인 말을 해준다. 엘자 옷을 입고 레잇고를 부르는 아이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해준다. "넌 절대 공주가 될 수 없어. 그리도 미스코리아도 못돼." 그럼 아이는 울면서 "우리 아빠가 된다고 했단 말이야"라고 대답한다. 그럼 나는 절대 웃지 않고 마녀로 빙의해 현실을 알려준다. "너의 엄마와 아빠의 유전인자로는 절대 미스코리아가 못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마녀 같은 웃음을 날려준다.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하냐면서", 나에게 볼멘소리를 하지만, 난 알려주고 싶다. 부모들의 거짓말로 인해, 더 큰 충격이 온다고 말이다. "너 딸만 낳아라. 내가 너처럼 꼭 말해줄 테니"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니가 말 안 해도 내가 다 말해줄 테니 걱정하지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만약 내게 딸이 있다면, 난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의 부모님처럼 하얀 거짓말을 해주겠지. 아님을 알지만,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벌써부터 진실을 알려 줄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겨울왕국출처 - 겨울왕국

 

안방에서 빨간 루즈를 덕지덕지 칠하고 이불과 수건, 총채로 요상한 짓을 하고 있는 딸. 거실에서 몇 개 없는 로봇과 미니카 그리고 집 안의 모든 지우개와 연필 그리고 필통까지 동원해 군대를 조직하고, 입으로 비행기, 탱크, 기관총, 대포 등등 모든 음향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전쟁놀이를 하는 아들을 본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도깨비 지랄하고 앉아있네"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저 말, 도깨비 지랄. 그녀의 윗니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검은 눈동자가 사라져 버리면 공주 봉이었던 총채는 어느새 회초리로 변한다. 그녀의 말과 모습으로 딸과 아들은 그 심각성을 눈치채고, 말하지 않아도 바로 무릎 꿇고 손을 번쩍 들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매를 덜 맞으려면 말이다.

 

지금이야 실감나는 공주 아이템에 트랜스포머 같은 로봇과 운전까지 가능한 자동차가 있어, 요즘 아이들은 다 가진 만큼 더 행복할 거 같다. 공주처럼이 아닌 공주가 되니 말이다. 가끔 나도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가장 부러운 건 티아라 ^^). 나의 유년시절이 지금의 아이들보다 가난하고 빈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없었기에 더 풍부한 감성이 있었고, 없었기에 더 높고 깊은 상상력이 있었다. 다 가질 수 없었기에 소중함을 알았고, 작은 바비인형과 미니카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요즘 아이들이 부러운 건 사실이다. 요즘 누가 수건에 총채에 이불로 공주놀이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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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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