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2014.12.01 07:30

 

도둑발이니 창살?!?! (무의도, 캐논 400D)

 

중국에서 발이 작은 여인이 미인이라고 인위적으로 발을 작게 만들었다는 전족이라는 악습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이가 전족을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누군가의 한 마디로 인해 전족은 아니지만, 일부러 발을 작게 만든 아이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초등(국민학교가 더 편하지만)학교 3학년 피아노 학원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여자라면 엄마 손에 이끌려 꼭 배워야 했던 사교육 중 하나가 피아노였다. 요즈음 피아노는 기본으로 플롯, 바이올린까지 배운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피아노만 배워도 충분했었다.

 

나의 시작은 엄마가 아닌 스스로 원해서였다. 놀이터에서 재미나게 놀다가 나만 두고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이 궁금해 몰래 미행(?)을 해보니, 피아노 학원이었다. 그때까지 학교, 집, 놀이터만 알던 나에게, 커다란 검은 물체에 치아처럼 가지런한 흰색과 중간중간 보이는 검은색의 무언가가 신기해 보였다. 허리를 쫙 펴고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그 물체에 올려 놓고, 톡톡톡 두드리면 신기하게도 소리가 났다. 학교에서는 본 풍금과는 전혀 달랐다.

 

"풍금이 왜 이리도 크지?"

"처음 보니? 이건 피아노라는 악기야."

피아노라고 알려준 그녀는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히메나 선생님을 많이 닮았었다. 큰 키에 가느다란 손, 긴 생머리의 그녀, 아니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셨다. 목소리도 어쩜 그리 달콤하게 들리던지, 구경하고 가라는 선생님의 말에 하염없이 예쁜 선생님과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이날부터 나의 고집은 시작되었다. 커서 피아니스트가 될 테니 제발 학원에 보내달라고, 말썽 안 부리고 진짜 진짜 착한 딸이 될 테니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며칠을 졸랐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밥까지 굶으면서 매달리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셨고, 드디어 나도 유명 피아니스트를 꿈을 갖고 당당히 학원에 입성했다.

 

첫날부터 제대로 된 연주를 할거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남들처럼 멋진 곡을 연주하고 싶었지만, 음계에 대한 이론에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건반을 두드리는 수준의 수업만 계속 되었다. 그래도 참고 견디다 보니, 어린이 바이엘을 시작으로 또래 친구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어느새 나도 두드리는 수준이 아닌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기에 따로 연습을 할 수 없어, 남들보다 일찍 학원에 갔고, 남들보다 늦게 학원에서 나왔다. 늦은 만큼 빨리 따라잡고 싶었고, 피아노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엄마가 무리를 해서 학원의 피아노보다 훨씬 좋은 피아노를 선물해주셨다. 이젠 일찍 갈 필요도, 늦게 나올 필요도 없이 수업시간만 지키면 되고, 집에서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풍족해진만큼 빠르게 시들해져 갔다. 어차피 집에 피아노가 있으니깐, 오늘 연습 못하면 내일 하지 뭐, 이런 생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진짜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남들에게 지기 싫었던 맘이 더 컸던 거 같다. 나중에 피아노를 괜히 샀다고 엄청 혼이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카가 잘 쓰고 있으니깐.

 

살짝 얘기가 옆으로 빠져버렸지만, 피아노 학원에 같은 반 남자 아이가 한 명 다니고 있었다. 다른 시간대였다가 그 녀석이 내 시간으로 옮기게 되면서 늘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장난 좀 하는 녀석으로 못생기고 뚱뚱했다. 피아노의 '피'자도 모를 거 같은 녀석이 나와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니다니 불쾌했다. 그래서 아는 척도 안하고 쌀쌀맞게 쳐다보고 다녔는데, 이런 내 모습이 그 녀석에게 좋게 보이지 않았던 거 같다.

 

2대의 피아노가 있는 작은 학원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각각의 방에서 연습을 하는 구조였다. 응접실 같은 곳이 있었지만, 말이 응접실이지 그냥 먼저 와서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한 푹 꺼진 소파와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었다. 좁은 공간이니 그 녀석과 마주칠 기회는 많았지만, 항상 쌀쌀맞게 무시를 했다.

 

비 오는 어느 날, 장화를 싣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 신발을 벗고, 내 시간을 기다리면서 과자를 먹던 중 그 녀석이 들어왔다. 들어와서 신발을 벗지도 않고, 한참 동안 놓여있는 신발들을 쳐다보더니, 내 장화를 툭툭 건드리면서 "누구 신발이야?"

엄마가 사준 새 신발을 툭툭 치고 있는 녀석이 미워, 여전히 쌀쌀맞게 "내꺼야."

"너 신발 무지 크다. 여자가 발이 크면 도둑발이라던데."

욱하는 성질이 발동하기 시작해, 내 목소리는 피아노 소리보다 훨씬 높은 데시벨이 되었고, 선생님이 말리지 않았으면 그 녀석 얼굴에 나의 손톱 자국을 선명하게 남겨주려고 했다.

 

그 녀석이 너무 보기 싫어서 며칠 동안 학원에 안 갔다. 이런 나의 상태를 아셨는지, 선생님이 시간대를 다시 조정해줬고, 학원에서 그 녀석을 보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에게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기기 시작했다.

 

옷이나 신발은 항상 엄마가 알아서 사주셨는데, 신발만은 내가 신어 보고 사야 한다면서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는 상태라 키를 생각해서 신발을 넉넉하게 신어야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넌 도둑발이야. 도둑발" 이 말이 너무 강렬했기에, 손가락 마디조차 들어가지 않는 완전 꽉 끼는 신발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엄마는 당연히 절대 안 된다고, 키가 계속 클 테니 여유 있는 신발을 사자고 나의 고집을 꺾으려고 매까지 들었지만, 맞는 한이 있어도 절대 꺾이지 않았다. 한 고집하던 성격인지라 결국은 내가 원하는 신발을 갖게 되었다. 딱 맞는 신발을 신으니, 발도 작아 보이고 도둑발이 되지 않을 거 같아 안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나 큰 무언가를 놓쳤다는 걸 성장판이 닫혀 가는 시점에 알게 되었다. 신발은 넉넉하게 신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남들보다 키가 큰 편에 속했는데, 고학년이 되면서 중간이 되어 버렸고 놀라운 반전 없이 모델 급 키로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하긴 딱 맞는 신발을 싣게 되면, 확실히 불편했다. 자라나는 시기이니 얼마 되지 않아 신발은 너무 꽉 끼어 버렸고, 금방 신발을 사달라고 하면 엄마한테 혼이날까 봐 무서워 말도 못하고 그냥 싣고 다녔기 때문이다. 발이 불편하니 걸음걸이는 오리처럼 뒤뚱뒤뚱 거리며, 잘 뛰지도 못하는 그런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 나의 신발 사이즈는 230이다. 나와 같은 키의 사람들보다 확실히 작은 사이즈이긴 하다. 발이 작아 귀엽다는 소리를 듣지만, 내가 봐도 많이 작다. 특히 발가락이 너무 작다. 키는 많이 자라지 못했지만, 귀여운 발을 가졌으니 좋아해야 하지만 실상은 작은 발에 비해 발볼이 너무 크다. 상하로 자라야 할 발이 막혀 있으니 좌우로 자라버린 것이다.

 

230 사이즈임에도 신발은 235를 신어야 하고, 구두는 항상 맞춤을 해야 한다. 발 사이즈에 맞는 신발을 신으면 볼이 아프고, 볼에 맞는 신발을 신으며 여유 공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죽은 늘어난다고 처음에만 살짝 불편하지 괜찮다고 해서 세일할 때 사게 되면, 개고생을 한다. 늘어날 때까지 그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구두는 맞춤으로, 운동화는 투박해 보이더라도 발볼이 넓은 녀석으로, 끈 샌들이 아닌 발볼을 숨길 수 있는 샌들로 신으면 된다. 그런데 절대 신을 수 없는 신발이 하나 있다. 바로 플랫슈즈다. 지금도 플랫슈즈가 인기 있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젤리 플랫슈즈가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으니, 젤리 슈즈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었다.

 

나도 그 유행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신어보니 좋았는데, 한발 한발 걸어보니 그 동안 숨겨왔던 볼이 세상을 구경한다고 빈대떡처럼 펑퍼짐하게 쫙 퍼져 버린 것이다. 젤리라는 특성상 그런 줄 알고 리본과 꽃이 달린 화려한 플랫슈즈를 신어봤다. 결과는 역시 이하 동일이다. 누가 봐도 예쁜데, 내가 신으면 신발보다는 볼에 시선이 모이니 문제였던 것이다.

 

도둑발 소리로 인해 발은 작아졌지만, 키 안 커 대신 볼만 커져버렸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가볍게 넘겨버리면 됐을 저 말에 왜이리 집착했던 것일까?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라도 있었다면 고민을 털어놨을 텐데, 철부지 오빠만 있었고, 부모님에게는 도둑발이 될 딸의 고민을 털어 놀 자신이 없었던 거 같다.

 

혼자 헤쳐나가기 힘든 고민이 있다면, 바보처럼 끙끙 앓지 말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아니면 나처럼 엄청난 후회를 할테니 말이다. 플랫슈즈는 진짜 신어보고 싶은데, 너무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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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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