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세이2014.12.29 07:30

 

귤이 너무 너무 조아~~

 

과일편식이 심한 나,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복숭아, 10월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새봄이 오는 3월까지 늘 옆에 끼고 다니는 아이가 바로 귤이다.

 

겨울을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귤도 크게 한 몫을 한다. 귤 한상자를 삼일 만에 다 먹은 적도 있고, 밥 대신 귤로만 배를 채운 나머지 손톱 끝이 노랗게 황달(?)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 버릇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어, 집에 귤이 없으면 짜증지수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돌이라도 먹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보이던 수험생 시절에는 귤을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말마다 청과물 도매시장을 가셨다고 한다. 그 눔의 자식이 뭐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보다 귤이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친오빠가 8~10살쯤 되던 해, 이웃집에 혼자 놀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를 돌보겠다던 분이 일이 있어 잠시 밖에 나가셨는데, 점심시간을 넘기고 저녁이 돼서야 오셨다고 한다. 남의 집 아들을 점심부터 굶겼다는 생각에 헐레벌떡 들어오셨는데, 글쎄 그 아이는 손톱이 노랗게 물이 들도록 방 안에 있던 귤 한 상자를 거의 다 먹었다고 한다.

 

울지도 않고,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고 혼자서 방 안에서 귤 한 상자를 다 먹은 그 인물처럼 나도 엄청난 귤 식탐을 갖고 있다. 지금은 5킬로, 10킬로 등 무게 별로 판매를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대형 상자에 그득그득 든 귤을 판매했던 거 같다. 아마도 10킬로는 넘을 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지들끼리 부딪쳐 상하는 녀석 없이, 자기들의 손톱이 황달로 변하는 것도 모르고 밥 보다는 귤만 서로 으르렁거리면 먹어댔다.

 

귤 껍질 까는게 귀찮아 예쁘게 까서 맛없는 흰색 줄까지 다 제거한 귤을 인터셉트 당해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쟁반 한 가득 귤이 있으면 무척 행복해 했다. 겨울은 쉽게 감기에 걸릴 수 있는 계절이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황달이라는 오해는 받았지만 말이다.

 

 

고모가 자꾸 괴롭혀요. ㅠ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누군가의 등장으로 인해 귤과의 전쟁을 해야 할 정도로 귤 궁핍현상에 빠졌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울고 웃고 먹기만 하는 녀석이 좋아하는 과일도 많으면서 왜 하필 귤까지 좋아하는지, 이래서 물보다 피가 진하다고 하나보다. 난 녀석에게 포도, 사과, 배를 양보했는데, 녀석에게 양보는 모르는 단어인가 보다.

 

조카 녀석의 등장으로 나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지기 시작했고, 당연히 먹는 것에서도 다시 두번째가 되었다. 어릴 때는 오빠가 먼저, 지금은 조카가 먼저가 된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1등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원래의 순위로 돌아왔고 이제는 어린 조카랑 싸워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말을 못할 때는 그저 몰래 숨기거나 무서운 인상 한번 보여주면 끝이었는데, 어느새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니 너무 어려워졌다. 말도 어쩜 그리 잘하고, 누굴 닮아서 그렇게도 나 어릴 때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지, 더구나 집 안에서 서열이 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지 항상 기어 오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자기도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내녀석이 어쩜 애교도 많은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완벽하게 포섭하더니, 이젠 남은 적군은 나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올 때마다, 자꾸만 날 괴롭힌다. 가장 치사한 먹는 걸로 말이다. 이걸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줄 수도 없고, 그래도 매번 난 싸움을 건다. 그런데 요게 은근 재미가 있다. 어릴 때 외삼촌들이 자꾸만 날 괴롭혔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 그분들의 심정이 지금 내가 느끼는 심정이라 비슷하겠지. 언제 올지 모르니, 그때를 위해 손톱부터 황달을 만들어 놓고, 기다려야겠다. 이길 수 없다면 미리 다 먹어버려야지.

 

녀석이 3살이던 해, 복숭아를 무지 싫어했다. 그래서 여름은 난 복숭아, 녀석은 포도였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어느 더운 여름날, 그 녀석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고모, 나 이제 복숭아도 잘 먹어." 그래 다 줄게, 다 가져라. 힝칫뿡!! ㅎㅎㅎ

 

 

귤에 대한 다른 추억이 하나 더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대시를 받았던 적이 있다. 물론 그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암튼 그 시절 나에게 호의를 주었던 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썸으로 가기도 전에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그 원인이 바로 귤이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분이었다. 큰 귤 과수원과 말 농장을 부모님이 하고 있다고 했었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동호회를 통해 만났고 그분은 나에게 호감을 느꼈던 거 같다. 솔직히 그분의 호의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냥 동호회 회원으로 잘 해준다고만 생각했고, 더 친한 여성분들도 많아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겨울이 왔다. 어느 날 온 문자 한 통, 회사 사무실 주소 좀 알려주세요. 왜 이럴까 했다. 물어보니, 집에서 귤을 보내준다고 하는데, 너무 많아서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오는 귤이니 그 맛은 안 볼 수는 없는 법, 당장 문자로 회사 주소를 보내고 기다렸다.

 

3~4일 후, 회사로 온 의문의 대형 상자 하나. 바로 그 분이 보낸 귤이었다. 많아서 보내준다고 하더니, 얼마나 많이 받았길래 한 박스를 보내주지 했다. 삼실 직원들이 뭐냐고, 궁금하다고 풀어보자고 궁금해 난리를 치지만, 솔직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주소 부분을 살펴보니, 제주도 그분의 부모님이 보낸 주소에, 회사 주소를 추가로 붙여서 보낸 것이었다. 즉 제주도에서 받자마자 박스를 개봉하지도 않고 그냥 새로운 주소를 붙여 내가 근무하던 회사로 보낸 것이었다.

 

이걸 본 회사 직원들은 "걔가 널 좋아하네. 맞아, 맞아 너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거야"라고 말하면서 기다리지 못하고 박스를 풀더니 주섬주섬 귤을 꺼내 까 먹고 시작했다. "야 이거 제주도에서 온 귤이라 그런가? 완전 달아 달아"이러면서 말이다.

 

다시 포장을 해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멍 때리고 있느라 직원들을 막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직원들과 함께 먹게 되었다. 아마도 그 분은 귤을 보냈으니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고맙다는 인사의 전화를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그분의 호의를 받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너무 급하게 달린 나머지,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동호회를 안 나가게 됐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유령회원이 되어 버렸다. 아이디 변경을 핑계로 나중에는 회원탈퇴까지 했다. 그렇게 귤 사건은 일단락 됐다. 그러나 겨울만 되면, 그 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추억만은 기억이 난다. 지금은 호의가 너무 과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던 내 자신에게 욕을 한다. '너도 넘 어렸구나. 제주도에서 엄청난 유지라고 하던데, 그때 본 귤을 생각해서라도 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라고 말이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과거의 일이고, 그때 남긴 교훈 한가지는 제주도 귤은 참 맛나다는 사실뿐이다. 귤은 역시 제주도, 현지에서 바로 보내준 귤이 최고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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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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