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세이2014.12.27 07:30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로망~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릴 적 크리스마스는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교회에 다니는 친구처럼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고, 캐롤도 부르면서 24일 산타할아버지를 밤새 기다리고 싶었다. 그러나 사월초파일은 새벽부터 바쁜 하루를 시작하지만, 12월 24일부터 25일은 그냥 여느 날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하는 24일은 그저 여느 평일이었고,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25일은 쉬는 날이었다.

 

일요일 같은 날로, 하루 종일 잼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해주는 날,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이었다. 동화책이었나? 영화였나?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었고, 착한 일은 하면 선물을 준다는 그 할아버지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굴뚝과 트리가 필요하지만, 우리 집에는 있을 리 없었다.

 

그때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머리 맡에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할아버지가 오셔서 선물을 놓고 가신다고 사실을 말이다. 내 양말은 너무 작아서, 아버지 양말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리고 3일 전부터 식구들에게 소문을 냈다. "난 착한 일 엄청 많이 해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시고 갈꼬얌. 내가 선물까지 받으려고 이렇게 양말도 준비했다."

 

어린 아이의 정성이 기특했는지, 진짜 선물이 생겼다. 내가 원하던 바비인형은 아니었지만, 산타할아버지 신발모양의 맛난 사탕꾸러미였다. 그리고 그 다음해는 종합선물세트 등등 이상하게 양말만 걸어두면 선물이 생겼다. 물론 바쁜 산타할아버지를 대신해 아빠가 대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한동안 선물을 계속 받고 싶어서 다 알아도 모르는 척 계속 양말로 협박 아닌 협박을 했었다.

 

그러나 나의 욕심은 선물 하나로 만족 할 수 없었다. 26일이 되면, 나보다 2~3개 더 많은 선물을 가지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미웠기 때문이다. 나보다 싸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녀석들이 선물은 나보다 많이 받으니 이거 뺏을 수도 없고 속으로 화가 많이 났었다. 그러다 또 다른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25일 아침 교회에 가면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난 교회에 안 다니는데 잘못된 빛인가 싶을 때, 작은 빛이 또 내려왔다. 교회에 다니면 되지. 뭐가 그리 고민이니. 그렇다. 교회에 다니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한달 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4번만 가면 크리스마스이고, 일요일 아침은 항상 세계명작동화를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기에 일어나는데 문제는 없었다. 당분간 만화를 못 봐서 아쉽지만, 만화보다는 선물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교회를 가고 기도를 하고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에 난 당당히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는 한번 했다고 한달 전부터가 아니라 2주 전부터 교회를 다녔다. 이렇게 해도 선물이 생겼다. 그리고 그 다음해는 25일 당일에 갔다. 꾀도 생겼고, 아침에 일어나 교회까지 가는 게 귀찮아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뭐, 안주면 안 받고 말지 이런 생각으로 갔다.

 

그런데 줬다. 또 받았다. 그렇게 3년을 아빠산타의 선물과 교회에서 주는 선물을 다 받고 다녔다. 교회에서 어떤 선물을 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사탕, 과자, 빵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4년재 되던 크리스마스 날,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일에 갔다. 미리 가서 눈도장이라도 찍으면 좋겠지만, 이젠 간이 배 밖으로 나왔고 나도 많이 자랐기에 뻔뻔함을 무기 삼아 갔다.

 

4년의 시간이 나에게만 왔던 거 아니었다. 그 교회도 4년동안 엄청 자랐던 것이다. 예전에는 작은 교회였는데, 이제는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만큼 교회에 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예전과 다르게 체계적으로 관리를 했던 거 같다.

 

헌금을 한번도 안 내고, 12월만 되면 빼꼼 얼굴을 비추던 나에게, 교회의 성장이 걸림돌이 될 줄 몰랐다. 여기에 하나 더 꼬봉이었던 녀석의 한마디가 주요했다. "선생님, 얜 우리 교회 안 다니는데요."

 

끝났다. 나의 꼼수는 4년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모른다. 저 말을 듣고도, 이제부터 잘 다니겠습니다 라고 말을 했으면 받을 수도 있었을 거 같지만, 나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고자질을 했던 그 녀석은 내가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내 손톱이 그 녀석을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며칠 후 얼굴은 들키니깐 안되고, 팔에 나의 선명한 손톱자국을 남겨줬다. 그렇게 나의 교인으로서의 삶은 끝이 났다.

 

그 시작이 잘못됐음을 안다. 그러나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그리고 교회에 가면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고, 캐롤도 부를 수 있어 선물보다 더 원했던 거 같다. 물론 선물을 줘서 또 가게 됐지만 말이다.

 

 

아침에 엄마에게 물어봤다.

"나 진짜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 받으러 교회에 갔어?"

"그래, 어린 게 선물 준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선물 받으러 가더라. 교회가 집에서 멀지도 않아서 그냥 두었는데, 몇 년을 더 가더니 안 가던데, 왜 안 갔던 거야?"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심했나 보다. 그래서 몇 십 년이 지난 오늘 "창피함에 안 갔어" 라고 말했다.

"어쩐지 그럴 거 같더라.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면서 들어오더라" 라고 그날의 나의 모습에 대해 알려주셨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그저 선물, 선물을 외쳤던 한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 대소동이다. 그 아이는 지금 고모산타로 활약 중에 있다. 고모산타가 되기 전에는 올나잇을 외치면서 친구들이랑 놀았던 아이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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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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