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풍경/in seoul2015.10.07 07:30



특정 주도세력이 없이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와 부패한 권력에 대한 자발적으로 봉기한 1960년 4월 19일 저항운동, 바로 4·19혁명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 손으로 만든 승리의 역사다. 그러나 피의 화요일로 만든 승리의 역사는 5·16군사쿠데타로 끝이 났다. 그리고 지금, 시간은 다시 거꾸로 가고 있다. 당신들이 만든 역사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도 못한채 말이다. 


국정교과서 세대였던 나는 4·19혁명을 4.19의거로 배웠다. 의거(義擧)의 사전적 의미는 정의를 위하여 개인이나 집단의 의로운 일을 도모함이다. 그러나 4·19는 의거가 아니라 혁명이다. 혁명(革命)은 기존의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교체의 형식을 말한다. 의미가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더구나 5·16 군사구데타를 4·19 정신의 계승이고 발전이라니, 어이상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발 국정교과서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작품명 : 민주의 뿌리



'처음이라 죄송하고, 늦게 와서 더더욱 죄송합니다.'



(출처- 국립 4.19민주묘지)

YS는 취임 후 민족사의 정통성 복원의 일환으로 그동안 의거로 불리우던 4·19를 혁명으로 격상시켰으며, 1963년 이곳에 처음 자리잡았던 4·19 묘지를 민주주의의 성지로 가꾸도록 했다고 한다. '좋은 일도 하셨구나'(마음의 소리)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 점이 있었다. 효창원을 효장공원으로 만든 일제, 여기에 운동장을 추가한 초대대통령, 더불어 북한반공투사위령탑를 추가한 유신정권까지, 창경원이 다시 창경궁으로 됐듯이, 효창공원도 다시 효창원으로 됐으면 좋겠다. 더불어 국립 4·19민주묘지가 민주주의의 성지이듯, 효창원은 독립운동가의 성지가 됐으면 좋겠다. 


■■ 여기서 잠깐~ 3·1절 시리즈 2화 - 효창공원



다목적 광장이다.



정의의 불꽃.



민주묘지로 가는 길. 4·19혁명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 기념관부터 가기로 했다.




4·19 혁명 기념관.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운영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이다. 4·19 혁명에 대한 기승전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4·19혁명 발생배경

1945년, 35년 동안의 일제의 억압과 질곡에서 벗어난 우리 민족은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강대국들에 의해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만의 단독 선거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2년도 채 되지 않은 1950년,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피 비린내 나는 6·25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3년에 걸친 전쟁으로 우리 국토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으며, 우리 경제는 자생력을 잃고 외국의 원조에 의존함으로써 물가는 자꾸 오르기만 하였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배회했다. 그러나 국가를 재건하고 국가경제를 일으켜야 할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자신들의 장기집권을 꾀하며 부산 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반대세력에 대한 폭력 등 온 갖 정치적 부정과 탄압을 일삼았다.

이승만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1956년 민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게 되자 이에 불안해진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에 있을 정·부통령 선거를 대비해 선거 1년 전부터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획책했다. (출처- 국립 4·19민주묘지)



저는 1944년생입니다. 1960년 4월 19일, 그는 고작 16살이었다. 부정선거 획책 - 민의의 함성 - 잔인한 민중의 지팡이 - 고귀한 희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있고 그 위로 4·19혁명의 진행과정을 일자별, 지역별로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의거가 아니고 혁명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더불어 가슴이 뜨거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 - 이승만 정권은 12년간 계속된 장기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미리 선거 조작을 계획했다. 4할(40%) 사전투표 및 투표함 바꿔치기, 유권자 명부 조작 및 대리투표, 득표수 조작 및 3인조, 5인조 공개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자유당 완장부대와 깡패를 동원해 유권자 위협. 그 결과 이승만 963만 표(85%), 이기붕 833만 표(73%)로 당선되었다.


3월 15일 마산의거 - 마산 시민과 학생들은 부정 선거를 폭로하고 선거 무효를 외치며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이 총을 쏘며 무자비하게 진압해 10여명이 사망하고 870여명이 중경상이 입었다. 이날 자유당 정권은 공산당 지하조직에 의한 폭동으로 몰고 갔다. 


3월 24일 부산 학생, 시민 시위

4월 3일 전주 전북대학생 시위

4월 12일 마산 고고생 및 시민 13,000여명 시위

4월 13일 해인대학교(현 경남대학교) 학생 시위

4월 15일 마산, 부산, 광주 고교생 시위

4월 15일 부산 동래고등학생 시위

4월 17일 제주 시민 시위, 진주 학생 시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시위 및 피습 - 국회 앞에서 평화적인 시위 후 학교로 돌아가던 학생들은 정치깡패 반공청년단의 습격을 받아 200여멍이 부상당했다. 정부는 시위를 더욱 강경하게 진압하기로 결정했고, 이 사건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4월 19일 서울, 대전, 전북, 전남, 부산, 청주, 경북, 인청, 경남 등 전국적 시위(피의 화요일) - 수많은 대학생, 시민들이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정권 물러가라고 외치며 곳곳을 누볐다. 시위대는 10만 명을 넘었고,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경무대로 향하는 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의 공방은 치열했다. 최루탄과 공포 사격으로 저지하던 경찰의 1차 저지선은 민주신념에 불타는 학생과 시민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소방차를 앞세운 시위대와 경찰의 간격이 10여 미터로 좁혀졌을 때, 경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경무대 사격을 시작으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이 가해져 꽃다운 젊은 학생과 시민들이 수 없이 희생되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반공청년단 본부와 왜곡 보도를 일삼았던 신문사를 불태웠으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차를 뺏고 경찰관서를 습격하는 등 항의 시위를 전개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승만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4월 25일 대학교수단 시위 - 이승만 정권의 미온적인 태도에 국민들은 다시 분노했다. 전국 27개 대학 교수단 258명은 종로에서 시위를 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 이 날 시위는 소강상태에 빠졌던 4·19 혁명에 결정적이고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4월 26일 승리의 화요일(이승만 대통령 하야 및 자유당 정권 종말) - 남산에 있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됐다. 계엄사령관 송요찬 장군은 학생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계엄군이 시위대에 발포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 사태수습이 불가능함을 알아차린 이승만 대통령은 마침내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마침내 불의에 항거한 민주이념이 승리한 것이다. 새로운 민주시대를 염원하는 환호와 만세소리로 전국이 들끓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부통령 이기붕일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승만의 하야 후 허정 내각수반이 과도정부를 이끌었고, 학생들은 파괴된 질서를 회복하는데 힘썼다. 그리하여 1960년 8월, 의원내각제의 장면 내각이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9개월 만에 민주주의의 불꽃은 5·16 군사구테타로 무너져 내렸다. (출처- 국립 4·19민주묘지)



4·19혁명 때 경찰의 발포로 친구를 잃은 수송초등학교 학생들도 어깨동무를 하고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속 눈이 따갑더니, 결국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고 말았다.



경기상업고, 동성고, 고려대, 중앙대, 동국대 (윗줄)

서울대, 경희대, 경신고, 경기고, 덕수고, 광주공원, 부산민주공원, 목포 민주화의 불길 (아랫줄) 



이승만 대통령 사임서.



기념관 2층에 있던 4·19혁명 선열들이다. 



이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YS 이후 모든 대통령이 다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참배하러 가는 길.



상징문.



기념탑 및 분향소.



4월 학생 혁명 기념탑.



분향소 뒤편에 묘지가 있다. 상징문을 지나면서 부터 찍은 사진들은 이상하게 블루톤이 강하게 나왔다. 지금 내 맘을 애디도 아는건가?




419 혁명으로 희생되신 분들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



유영봉안소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고 한다. 조금 늦었는데, 벌써 문은 닫혀 있었다. 한번 더 오라는 말씀으로 여기고, 문 앞에서 묵념을 드렸다.



너무 아프고, 너무 슬펐다.



4·19혁명 의의

1. 4·19혁명은 특정 주도세력이 없이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와 부패한 권력에 대해 자발적으로 봉기한 저항운동이었다.

2.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므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향해야 하며, 국민의 지지와 신망을 받지 못하는 정권은 존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3. 허약하고 무능한 정보, 경제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국가는 민주발전을 이룩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4. 해방과 더불어 수용된 서구 민주주의가 모방과 이식만으로는 정착될수 없고,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5. 20세기 말 일기 시작한 세계적인 스튜턴드 파워(student power)의 하나로서, 일본과 터키 등 국제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권은 국민에 있다는 두번째 의의, 누군가에게 꼭 전달해주고 싶다.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받은 안내책자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 학생의 유서. 유일하게 유서를 남긴 분이라고 한다. 그녀는 4월 19일 밤 데모버스에 타고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시위를 하다가 북선파출소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유서는 숨지기 4시간 전에 썼다고 한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두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와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4·19혁명은 몇 년도인가? 년도별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시오? 이딴 식으로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만들지 말고, 4·19혁명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끝으로 대한민국에 자유, 민주 그리고 정의를 꽃피운 그분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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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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