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세이2015.12.01 07:30


냄비밥 사진이 없어, 돌솥밥 사진으루다.

지난주 수요미식회 밥편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이 있었다. 기억이란 녀석은 참 신기하다. 잊었다고, 망각의 세계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충격으로 인해 떠오르니 말이다.

 

냄비 밥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쌀을 씻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쌀을 불린 다음에 노란 또는 은색 양은 냄비에 밥과 적당량을 물을 넣는다. 그리고 석유곤로에 성냥불로 점화를 시키고, 강한 불로 끓인다. 뚜껑이 들썩들썩 어설픈 춤을 출 때, 불을 반으로 확 줄인다. 그리고 10여분이 지나면 완전 약한 불로 줄인다. 이젠 살짝 탄 냄새가 날 때까지 그냥 두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절대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단. 감에 의존해서 불 조절을 해야만 고슬고슬 맛난 냄비 밥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다 내가 했을까? 아니다. 쌀을 씻고 냄비에 넣는 과정은 엄마가 한다. 나는 고작 불 조절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별로 어렵지 않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 조절을 쉽게 보면 절대 안 된다. 뜸을 들이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자꾸 뚜껑을 열게 되면 삼층밥이 되거나, 새까맣게 탄 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 끼니마다 뜨신 밥을 드셔야 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냄비 밥을 했다. 그 덕에 항상 고슬고슬 윤기가 도는 맛난 밥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절에 가셔야 하는 어머니로 인해 아침 만화를 포기하고 부엌에서 불과 씨름을 하면서 밥을 지었다.

 

토요일 저녁, "곤로에 다 올려놓고 갈 테니, 너는 불 켜서 처음에는 쎈불로 했다가,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면 중간 불로 아니다. 그냥 확 약한 불로 줄인 다음 기다려. 자박자박 냄비에서 소리가 날 때까지 그냥 가만히 두면 된단다. 중간에 절대 뚜껑을 열면 안 돼. 알았지."

 

반복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았다. 처음에는 말로 설명했다가, 삼층밥을 만들고 난 후에는 직접 며칠 동안 현장학습을 시켰기 때문이다. 한번의 실수가 있고 난 후, 나도 어느새 냄비 밥 짓기 달인이 됐다. 일요일 아침 엄마가 없으면, 알아서 부엌으로 가, 밥을 지었다.

 

숭늉을 항상 먹어야 했던 가족을 위해, 살짝 탄 냄새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냄비 가장자리에 밥물이 넘칠 때도 있었지만, 절대 조급해하지 않고, 불을 더 줄이거나, 완전 스피디하게 뚜껑을 열었다가 닫으면 됐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냄비 밥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냄비 밥 정도는 충분히 할 줄 아는 능력자(?)가 됐다. 여기서 잠깐, 최상의 밥물을 맞추는 건 항상 어머니가 해줬지만 말이다. 밥과 물은 어머니 담당, 나는 고작 불 담당이었던 것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밥은 항상 냄비에 지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먹었고, 그것만 먹었기에...

 

대학생이 됐고, 집보다는 밖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밥 맛을 잃어버렸다. 밖에서 먹는 밥은 하나같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슬고슬하니 밥알이 살아 있지도 않고, 고소한 밥 냄새도 없이, 그저 스댕 밥 공기에 담겨 나오는 푸석푸석한 밥을 먹어야 했다.

 

이래서 집밥, 집밥이라고 하나보다. 왜 엄마가 만들어 주는 그 밥맛이 안 날까? 왜 식당은 냄비로 밥을 짓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들 때쯤, 획기적인 솥을 만났다.

 

전기밥솥이다. 둥글고 커다란 솥에 밥을 넣고, 솥에 표시되어 있는 눈금에 물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그리고 취사 버튼을 누르면, 밥이 된다는 것이다. 뜸은? 이라고 질문을 하려고 하니, 버튼이 딸깍 소리를 내면서 보온으로 바뀌더니 알아서 뜸까지 다 해준다. 와~ 이런 신기한 물건이 있다니,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냄비를 불에 올리고, 다 될 때까지 쳐다볼 필요도 없이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되니, 얼마나 신기하고 획기적인 발명품이던가? 왜 그 동안 우리 집은 그 어렵도 힘든 냄비로 밥을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설마 전기밥솥을 살 돈이 없어서? 이건 아니다. 왜냐하면 명절에 식혜를 만들기 위해 비슷한 밥솥을 꺼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식혜를 만들기 위한 물건인 줄 알았다. 한번도 그 솥으로 밥을 한 적을 본 적이 없었다. 바보같이 우리 집이 가난해서, 전기밥솥 하나 살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신기한 발명품(?)을 모른 채 매번 힘들게 밥을 한 어머니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집에 밥솥이 있는데, 왜 매번 냄비로 밥을 해."

"니 아빠가 냄비 밥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아빠도 참... 엄말 힘들게 하는구나."

 

덕분에 나도 맛난 밥을 먹었다는 걸 모르고, 그저 완고한 아버지만 미워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더 맛난 밥을, 매 끼니마다 뜨신 밥을 먹게 해주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을 말이다. 고작 한 달에 2번 대신 냄비 밥을 하면서, 투덜거렸던 내 자신이 가증스럽다.

 

지금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전기밥솥을 사용하는 어머니. 지금은 매 끼니마다 갓 지은 밥을 찾지 않는 아버지. 세월은 어머니에게 편리함을 아버지에게 완고함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됐을까? 손이 큰 어머니 때문에 항상 식은밥 또는 찐밥을 먹는다. "너는 밖에서 먹을 때가 많으니, 그냥 먹어. 이렇게 식은 밥이 많은데 밥을 또 어떻게 해."

 

지난 주말 어머니에게 제발 냄비 밥을 해달라고 간절히 빌고 빌어 드디어 오랜만에 냄비 밥을 먹었다. 밥만 먹어도 좋을 만큼, 어찌나 밥맛이 좋던지, 배추김치와 김만으로 혼자서 냄비 밥을 뚝딱 다 먹었다. 냄비채 들고, 바닥까지 빡빡 긁어서 먹었다. "역시 밥은 냄비 밥이지" 하면서 말이다.

    

가끔 맛난 밥을 먹고 싶을때, 냄비에 밥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한 냄비 밥은 엉망이 된다. 밥이 질거나, 너무 고두밥이 되기 때문이다. 냄비 밥 하나는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내가 하면 안 될까? 불 조절은 완벽한데, 어머니가 한 그 밥맛이 안 날까?

 

하하~ 생각해보니, 불 조절만 배웠지, 물 조절은 못 배웠다. 일반 전기밥솥은 쌀 양에 따라 물을 넣을 수 있게 눈금이 표시되어 있지만, 냄비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밥물을 손등까지 맞추면 된다고 배웠지만, 쌀에 따라 물을 달리한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더불어 쌀을 불려야 되는데, 몇 분 정도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창피했던 냄비 밥, 절대 가난하지 않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밥을 먹었는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 일요일 아침 부엌에 퍼지던 밥 향기와 냄비 가장자리에 넘쳤던 밥물이 마르면서 생기는 거미줄 같은 하얀 거품을 걷어 먹고 그리고 밥알 하나하나 윤기가 자르르 돌았던 냄비 밥. 매일 먹었던 그 밥이 이제는 어쩌다 한번 먹는 소중한 밥이 됐다.

 

곤로에 냄비를 올리고 밥이 다 될 때까지 계속 지켜봐야 했던 냄비 밥은 엄마의 사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참 바보같이 너무 늦게 알았다. 집밥의 위대함과 소중함은 반찬 가짓수가 아니라, 정성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 말로는 전하지 못할 거 같아 이렇게나마 남기고 싶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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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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