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시선/도서2015.12.28 07:30


일제강점기, 해방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초기 정부 여기에 닥쳐온 6.25 전쟁. 이건 우리의 너무나 아픈 역사다. 아픈 역사라고 하지만 솔직히 얼마나 아픈지 잘 와닿지는 않았다. 사건 위주로 외우기 급급했으며, 정부가 어떻고 대통령이 어떻고 등등 높은 분들 위주로 역사를 담고 있기에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가슴은 차갑기만 했다.


그런데 박종휘의 태양의 그늘을 읽고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더불어 잘못한 사람,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버젓이 있건만, 언제나 그 벌은 항상 힘 없는 백성들이 받는다. 그들은 단지 잘 먹고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누가 나라를 팔아 먹고, 해방된 조국이 둘로 나뉘고, 다시 같은 민족이 총을 겨누는 일은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그 피해는 이렇게 만든 사람이 아닌, 아무 죄없는 백성들에게 간다. 여기 한여자와 한남자가 있다. 단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나라는 정부는 국가는 그들의 사랑에 훼방꾼이 된다. 우리 역사가 그들의 사랑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사랑보다 더 큰 무언가는 없으니깐.



"빛바란 사진에서 탄생한, 현실보다 더 생생한 이야기" 책을 읽기 전에 무슨 말인가 했다. 재미있는 소설책이니 당연히 허구인 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다 볼때까지, 허구인데 너무 사실적으로 담았구나 했었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읽다가 태양의 그늘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됐다. 1장의 제목이었던 팔천 겁의 인연, 작가와 할머니도 팔천 겁의 인연이었던 거 같다. 그동안 보고 읽었던 우리 근대사가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가족이 만난, 하나의 가족이 됐고, 그 가족에게 닥쳐오는 무시무시한 그림자(슬픈 우리역사)를 보면서 이 말이 생각났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버텨야 했던 그들(채봉과 평우)을 보면서, 힘 없는 백성들은 그저 이렇게 살았구나. 해방이 뭔지? 자본주의가 뭔지? 공산당이 뭔지 모르던 그들에게 자꾸만 이념적인 갈등을 심어 주고, 좋은편 나쁜편으로 편 가르기를 하고, 결국은 나 살자고 너를 죽게 하는 일들까지, 그들이 진정 원하던 삶은 이게 아닐텐데 말이다. 왜 가만있는 그들을 자꾸만 괴롭히는지, 너무 답답하고 너무 아파서 혼났다.



줄거리는 이렇다. (더 자세한 줄거리가 궁금하다면 네이버북) 남상백과 윤채봉의 우연한 만남 후 남상백은 자신의 막내아들인 평우를 채봉과 맺어 주려는 장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남평우와 채봉 어머니와의 우연한 만남, 또 평우의 형, 채봉의 오빠가 동문이었다는 사실. 많은 우연들이 모여, 그들은 부부가 됐고, 그들은 한 가족이 됐다. 


일제 강점기였지만, 잘 살았던 두 집안의 형편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두 집안 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였기에 지역에서 평탄도 엄청 좋았다. 아이도 낳고, 낳다가 죽을뻔한 경험도 있었지만, 아들, 딸 또 아들에 이어 뱃속에 아기까지 너무 사랑했고 다정했기에 신의 질투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단란했던 그들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유명한 사진작가였던 평우의 작품이 본인도 모르게 여수반란 전단 표지에 실리게 되면서 그는 공산당으로 지목 당하게 된다. 


『남편이 무슨 죄를 어떻게 지었다는 말인가? 그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해방이 되기를 기다렸으며, 예나 지금이나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어 했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려고 했다. 그런 그가 지금 이 나라의 누군가에게 잡혀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이고, 그를 잡아간 이들은 다시 찾아와 집 안을 뒤집어놓고 갔다. 채봉은 문든 권학순 변호사가 지금은 죄가 있고 없고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걸려들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본문에서)』


끝내 평우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그런데 여기서 소설적인 조미료가 들어갔는지, 아니면 정말 팩트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살아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 남편이 죽은 줄 알았던 채봉은 그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되고, 언제가는 꼭 만나게 될 것을 예감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6.25 전쟁이 터진다. 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 채봉이지만, 가족을 살리기 위해 그녀는 공산당의 일원이 된다. 공산당은 인민을 괴롭혔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한국군 역시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죽었다. 같은 민족이면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채봉은 4아이들과 빨치산이 되어 피난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님을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가 1부 줄거리다.


책 소개를 보면 3부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끝- 이라는 표시 없이 소설이 끝난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가, 추천의 말이 나와서 당황했었다. 생생 달리던 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은 듯, 그렇게 1부작이 마무리 됐다.  아직 2부가 나온다는 정보가 없으니,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영화 국제시장처럼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를 직접 겪은 채봉과 평우 그리고 자식들까지 세대에 걸쳐 이러지는 굴곡진 그들의 한 많은 이야기를 어서 빨리 보고 싶다. 국제시장처럼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국제시장보다 훨씬 더 리얼하고 생생하다 그래서 더 아프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인물 계보와 그 앞페이지에 있던 인물소개 페이지. 이렇게 알기 쉽게 나와 있어서, 이해하는데 수월했다. 인물이 많은 소설은 인물들간의 관계때문에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찾아 봐야 하지만, 태양의 그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두 집안을 연결해주는 인물이자, 주인공은 남평우와 윤채봉이다.


태양의 그늘을 다 지난 역사 소설이라고 치부해서는 안되는 이유. 아픈 우리 근대사이지만, 왠지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헌사하고 싶을만큼 엄청난 명대사들이 포진되어 있기에 더더욱 오늘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남한도 물론이고, 둘 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개인 영웅주의와 권력을 잡기 위한 구실로 이념을 이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부하는 것은 애초에 없던 것을 국민이 만들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국민보다 자신을 먼저 지키는 괴물이 되게 마련입니다. 국가의 생존 본능이지요."


"부디 민족을 서로 죽이는 전쟁을 하루 빨리 중단하고 이제부터라도 어느 미친 영웅을 위한 정부나, 정부를 위한 정부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어나가라고 전해주기 바란다."

(본문에서)


2부는 어떤 내용으로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줄지 기대된다. 역사는 언제나 높은 사람들만 거론된다. 그러나 그 속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이들을 이야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아니다. 민족이라는 국가라는 정부라는 굴레에 갇혀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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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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