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세이2016.02.06 07:30

겨울 노란 알배추는 참 맛있다. 슴슴하게 된장을 풀어 된장국으로, 칼국수의 영원한 베프인 겉절이로 그리고 엄마 몰래 라면 끓일때 넣어도 좋다. 달달하고 시원한 국물맛은 라면스프만으로는 나올 수 없으니깐. 이렇게 맛난 겨울 배추를 좀 특별하게 먹고 싶다면, 기름과 밀가루가 필요하다.


우선 밀가루는 살짝 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개워놓고, 노란 알배추의 단단한 줄기부분은 칼 손잡이 뒷부분으로 살짝 찧어준다. 그래야 들뜨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준비를 다 끝났다. 배추를 밀가루 반죽 그릇에 담그지 말고, 시스루 옷을 입힌다는 생각으로 왔다 갔다 가볍게 묻힌 다음,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넣어 부치면 된다. 그럼 둘이 먹다가 둘다 죽어도 모르는 엄청난 배추전으로 탄생한다.


겨울이 오면, 우리집 주말 풍경은 이렇다. 엄마는 배추전을 부치고, 아빠는 막걸리 병을 뒤집어서 잘 섞이도록 흔든다. 나는 그 옆에서 젓가락을 들고 공격 대상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울때쯤, 드디어 나타났다. 비주얼은 그냥 투박하고 평범한 배추전인데 그 맛은 과히 압도적이다. 특히 배추 끝부분에 붙어 있는 밀가루 반죽은 튀김보다 더한 바삭함을 뽐낸다.


배추의 달달한 맛을 몰랐던 시절이기에, 배추보다는 배추에 붙어있는 반죽만 공격을 했다. 그러다보니 벌거벗은 배추는 항상 아빠 몫이었다. 그만 좀 골라먹어, 아빠 좀 드셔야지, 항상 뒤따라 오는 엄마의 잔소리는 가볍게 무시한다. 소량의 기름만으로 만든 배추전에서 바삭함 튀김맛을 느낄 수 있으니 어찌 그만둘 수 있을까? 간혹 밀가루 옷이 두텁게 입혀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쉬어가는 시간이다. "요 녀석들, 요건 맛이 없는 걸 어찌 알고..." 허허. 아빠의 너털웃음, 엄마의 잔소리, 바삭함만을 노리는 나. 어린 시절 배추전과 함께한 겨울밤의 모습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누구 못지않은 큰 손이다. 뭐하나 했다하면, 잔치한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그 양이 엄청나다. 배추전도 했다하면, 5~6장으로 끝나는 양이 아니라 그냥 탑이다. 김밥도 했다하면 30줄은 기본이었으니깐. 그런 엄마 밑에서 크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작은 손이 됐다. 아니다. 난 적당하고 현명한 손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나보다. 지금도 넌 손이 작아 큰일이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많이 해서 남기고 버리는 것보다는 적당히 해서 남기지 않고 다 먹는게 좋은 거 같은데...


고등학교 겨울 방학때,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 그날 아침에 모임이 있어 일찍 외출한 엄마는 가족들 오면 같이 먹을 생각으로 또 배추전 탑을 만들어 놓으셨다. 늘 먹던 알배추전이 아니라, 이번에는 얼가리배추전이었다. 이번에는 녹색탑이구나 했다. 왠지 맛이 없을 거 같아서, 라면이나 끓이려고 하는데 젓가락을 든 친구가 어느새 녹색탑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먹기 전에 물어야 하는데, 먹으면서 물어본다. 

"배추전인데, 경상도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래"

"처음 먹는데, 근데 이거 맛있다."  

그렇게 한장, 또 한장, 또 또 또, 빨간머리앤에서 다이애나가 와인을 포도주스인줄 알고 다 마셨던 에피소드처럼, 조금 먹고 말겠지 했던 내 생각과 달리 친구는 8층탑을 4층탑으로 만들고 나서야 젓가락을 놓았다. 그날 저녁, 온가족이 먹을 생각으로 만들었던 엄마는 4층탑으로 변한 배추전을 보고 놀라셨고, 친구는 지금도 얼가리배추(별명)로 불리우고 있다.



어릴때는 그저 튀김같은 바삭함 맛에 반해 배추전을 좋아했다. 그러나 어른스런 입맛으로 점점 변하면서 노란 알배추의 단맛이 더 맛있음을 알게 됐다. 고소하게 부쳐 갓 나온 배추전을 젓가락으로 결대로 자른 후, 줄기부터 이파리까지 돌돌말아서 양념간장에 살짝 찍은 다음에, 호호 불어서 먹는 그 맛은 안 먹어본 사람을 정말 모를 것이다.


통으로 부쳐서 배추가 품은 즙은 그대로 살아 있으며, 한입 베어 물었을때 흐르는 즙은 기름과 만나 단순한 물이 아닌 고소한 육즙으로 변한다. 더불어 얇고 바삭한 반죽은 뜨거운 열기로 인해 물컹거리고 흐물거릴 수 있는 배추의 식감을 대신할 완벽한 구원투수다. 들어가는 순간 바삭함을,  베어물었을때 흐르는 육즙은 기름과 만나 고소함을, 마지막이 되야 만날 수 있는 알배추의 달달함까지 긴긴 겨울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참 훌륭한 야식이다.


이번 설에도 우리집은 어김없이 배추전을 부친다.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참 단순한데, 맛은 여느 전보다 훨씬 좋기에,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제발 이거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왠지 꼬치에 동그랑땡에, 녹두전에 하루종일 전만 부칠 거 같다. 여기에 만두까지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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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칠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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